지난 7월 청지기회에서 앞으로 매월 마지막 주일은 선교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마28:19-20)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개신교 선교사의 숫자가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요즘은 백인 선교사 숫자보다 한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중남미, 아프리카 선교사의 숫자가 급등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에 힘을 써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이 영혼구원하고 제자삼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인데 그 이유가 선교를 잘 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가난과 불편을 겪으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교를 합니다.이런 기독교를 향해서 비기독교인들은 극성스럽다고 비난하기도합니다. "왜 그 나라 민족 고유의 전통을 가지고 살도록 그냥 두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비난은 그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국가를 방문해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고, 그 중에 여인들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살고,아이들은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도 같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양반과 평민, 그리고 천민으로 나뉘어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고, 여자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었고, 아이들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조국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고 복음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평등해지고, 인권이 상승되고, 장애가 있는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나라고 변하고 성숙되어진 것입니다.
또한 비기독교인들이 선교를 비난하는 다른 이유는 "왜 한 종교를 가지고 잘 살고 있는 나라에 기독교를 전해서 나라가 갈라지게 만들고, 풍파를 일으키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한 종교가 국교가 되어 있을 때 오는 부패와 그 안에서 겪는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도덕성은 높아지고 다양성이 자라고, 성숙해 지면서 사회가 발달한다는 것은 사회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복음을 전해서 크리스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마음이 없는 곳에는 억압이 가득하기에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각 목장마다 선교지의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헌금을 정성껏 준비해 보내드려서 선교사님들이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 강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