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현장, 목장모임
하나님이 질병을 치유하시는 방법은 2 가지다. 질병을 없애주시던지, 질병에 의미를 부여하신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 기간에 많은 병자를 만나 상담해 주시고 치료해 주셨지만, 사도바울의 몸에 있는 질병은 그대로 두심으로 치료하셨다(고후 12:7-10).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바울의 육체의 질병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은혜의 도구임을 깨닫게 하셨다. 질병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바울은 육체의 고통을 품어 영광의 상처로 만들었다. 자신의 질병을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미우라 아야꼬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은 질병의 의미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프지 않으면 하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다.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도 없다.”
폴 투루니에는 “질병을 치료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목장에서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섬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 보다 질병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질병으로 인한 염려와 두려움이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질병에 아니라 그 질병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건강이란 병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강은 삶의 질적 문제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구김살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폴 투르니에는 말했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버림받은 상처가 컸다. 그 상처는 그랜드 캐넌의 골짜기만큼 깊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고통스런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50:20)
요셉이 하나님의 안목으로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자 상한 감정이 치유되었다. 내적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목장모임은 이렇게 자신의 사건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간이다. 이때 우리는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헨리 나우엔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사랑으로 만지는 사람에게는 치유가 일어나며 새로운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고통을 피하고 외면한다.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아무리 외면해도 고통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 고통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가며 웃음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질 때 치유가 일어난다. 이곳이 바로 사랑으로 섬기는 목장모임이다.
- 강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