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은 사랑의 연습이다.
메리 크라울리는 “헌신하는 한 사람이 흥미만 가진 100사람보다 더 낫다”고 하였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은 헌신이 수반된 예배를 원하신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헌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된다. 헌신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것들과 구별되어진 거룩한 제물이 된다. 우리의 몸을 드릴 때 구약시대 짐승을 잡아 드렸던 죽은 제물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산 제물이 된다. 이것을 합당한 예배라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결국 헌신이란 나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는 삶을 말한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 내안에 사는 이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게 되고 그 일에 인생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헌신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헌신은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헌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헌신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헌신은 희생을 요구한다.
헌신이 아닌 것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헌신이 아니다.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알지 못하면 평생을 살아도 배우자가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지만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알면 날마다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진정한 헌신이 된다. 그래서 진정한 헌신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먼저 이 세상의 풍조를 좇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말하자면, 세상의 가치관을 좇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헌신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산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헌신해야 할 사역의 장은 세 곳인데 가정과 직장과 교회이다. 출산을 하고 자녀를 양육할 때, 집을 구입하거나 이사를 할 때 가정에서 헌신해야 한다. 취직을 하거나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최선을 다해 일하며 헌신해야 한다. 성도는 모두 제사장으로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그래서 항상 교회에서 청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가정, 직장,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