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원하신 공동체는 인종차별이 없고 계급차별이 없고 성별 차이가 없이 하나된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약교회 즉 예수님이 약속하신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공동체'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나타난 기적이나 치유, 기도응답에 포커스를 두고 놀랄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신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사회적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압도적인 성령 체험을 하게 된 120여명이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요엘서 2:28-29의 예언이 성취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사도행전 2장 16절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요엘의 예언이 성취 되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시작은 남종과 여종까지 성령을 체험하며, 당시 사회적 장벽을 허물어뜨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드니의 한인교회 공동체는 유교사상, 불교사상, 한국교회의 전통과
교권주의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령 안에서 하나됨이 중요한데 교회의 리더십들이 하나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신 공동체는 모두가 연합하고 화합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배운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갈릴리 시골 사람도, 예루살렘 도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들도,
의인도, 죄인도 모두 예수 공동체에 포함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 지치고 짓눌린 사람, 병자들,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 사마리아 사람, 여자들, 어린이들까지 모두 예수 공동체에 초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간 가치를 부인하며 그 사람들과 상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목장(가정교회)을 세워가면서 사람을 가리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환영하고 십자가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을 깨닫고 수용하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영혼구원의 벽돌을 쌓기 위해서 섬김을 실천하면서 만나고 기도해 주고 예수영접의 자리까지 안내하고 생명의 삶공부 수료까지
안내하며 섬겨야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그 이상의 관계 형성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다가 상처받거나 탈진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문제는 인간적으로 친해진 사람들이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관, 세속주의에 찌들어 있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교회에서 변화된 삶이 아니라 죄인 된 삶을 반복하면서 신앙생활이 아니라 죄인생활을 지속 하는데 있습니다.
기도제목을 말하면서 배우자나 친구나 직장동료를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것도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말하면서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사건을 통해 느끼는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내 마음이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공동체를 세워갈 사명이 있습니다.
2024년 3월 3일 주일 아침에
여러분의 목사, 강승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