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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장

 요셉과 아버지 야곱이 23년만에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요셉이 죽지 않고 이집트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로 짐을 챙긴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중에 이집트로 출발해도 좋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허락과 축복 속에 야곱의 가족 70명이 이집트로 향한다.

 

감격적인 만남 후에 요셉으 야곱에게 직업을 목자라고 밝히라고 말한다.

목축은 이집트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직업이고 그렇기에 고센이라는 먼 지역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까지 한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목축업과 이방인들을 경멸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야곱의 가족들을 안전하게 하였다.

덕분에 야곱의 가족들은 이집트의 주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센 지역에서 이집트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민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욥기 12장

욥은 세 친구들의 비핀을 하나씩 반박한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주장하는 기계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은

현재 욥의 상황을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

친구들은 마치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인듯, 자신들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욥이 볼 때에는 엉터리 소리였다.

선하고 열심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임하고, 악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저주가 내린다는 단순한 도식은

한편으로 볼때 하나님 중심적인 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중심적인 말일 뿐이다.

그런 하나님은 인간에게 길들여진 하나님에 불과하다.

 

욥은 하나님이 그런 기계적인 존재가 아닙을 외친다. "그가 헐은신즉 다시 세울 수가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14절)

그분은 재판장, 왕들, 제사장들, 충성된 사람들, 늙은 자들, 귀인들, 강한 자들을 무너뜨리신다.

그분은 인간의 지혜를 어둡게 하고 오히려 캄캄한 곳을 향해 비틀거리며 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공식화 될 수가 없으며 인간에게 길들여질 수 없는 분이시다.

 

 

마가복음 16장

예수님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죽음의 고통이 끝나고 부활의 영광이 찾아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엠마오로 가는 2제자에게 나타나시고,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분은 새 하늘과 새 당의 역사를 설명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냥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함께 역사하셔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신다(20절).

 

 

로마서 16장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그들과 함께 동역하고 있음을 말한다.

교회 안에 독불장군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신자들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더불어 바울의 권면처럼 거짓 교사들을 경계해야 한다.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17절)

연합과 분별은 한 가지이다.

하나됨을 위해서 분별을 포기해서는 안되고, 분별을 위해서 하나 됨을 져버려서도 안된다.

분별함으로 하나됨을, 하나됨으로 분별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교회가 복음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방법이다.

하나됨을 위해 찾아오는 고난이 있다면, 의인이 받는 고난임을 알고 마땅이 고난을 감당해 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깨달음과 적용하기>

하나님은 요셉의 외로움을 아시고 23년 후에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기게 하신다.

야곱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요셉을 다시 만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우래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고센땅에서 그들이 안전하게 지내고 민족을 형성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특히 하나님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분이 아니심을 욥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축복의 공식에 길들여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요셉과 욥은 많이 닮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는 것과 나중에 다시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 닮았다.

무엇보다 요셉과 욥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우리가 욥기 같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복음서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예수님의 감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을 구약의 그림자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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