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장
야곱에 에서의 축복을 빼앗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서 잘 볼 수 없게 된 어느날'(1절)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이삭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의 시력도 어두워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믿음으로 실천하려는 의지까지 있었습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도록 했지만 리브가의 신앙은 본받을 만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여기고 이삭은 예언의 말씀을 잊어버린 상황에서 리브가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에스더 3장
아말렉의 후손이며 아각사람인 하만이 등장합니다. 문지기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데 하만이 이것을 알고 분을 품게 됩니다.
하만은 5년동안 기회를 노린 끝에 왕의 허락을 받아 페르시야 전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죽일 것을 공포합니다.
치밀한 하만은 즉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월 동안 준비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을 더 잘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대 위기가 찾아옵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방도를 찾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마태복음 26장
십자가 처형을 위해 잡히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벳세다에서 마리아가 부은 향유를 통해 장례를 준비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써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가룟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사로 끌려 가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결박 당하시고 심문을 받으십니다.
침묵하신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를 우리에게 말하라'(63절)는 질문에 대해 '네가 말하였느니라'(64절)라고 답변하십니다.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한 산헤드린 공회는 사형을 선언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시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
사도 바울은 예수님처럼 법정에 서 있습니다. 유대교로부터 고발당한 바울은 스스로 신학적인 변호를 시도합니다.
자신이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다는 점, 그 누구보다 그리스도인들을 열정적으로 핍박했다는 점,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점,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ㅂ다았다는 점 등을 강조합니다.
이런 내용을 통해 베스도와 아르립바를 전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처럼 받울도 무죄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합니다.
<깨달음과 적용하기>
영적인 눈이 감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지기 못하게 됩니다. 에서가 그랬습니다.
영적인 눈이 감기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게 됩니다. 하만이 그랬습니다.
영적이 눈이 감기면 하나님의 아들이 눈 앞에 서 있어도 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분노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삭처럼 희미한 시력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기독교 신앙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시대에 오직 복음을 말했고
복음을 의지했습니다. 방루은 예수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삶도 즐겁게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던 참된 제자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주님을 즐겁게 따라갈 수 있는 제자로 성장하고 있습니까?
주님~~ 우리 모두 영적인 눈을 뜨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