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이삭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구속사적 계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문의 사건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아브라함이 그랄로 내려가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처럼
이삭도 리브라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앗겼다가 되찾고 이삭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복을 얻은 것처럼, 이삭도 가는 곳마다 복을 얻습니다. 우물을 파서 싯나, 에섹, 르호봇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협정을 맺은 것처럼, 이삭도 아비멜렉과 협정을 맺는데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비겁하고 겁많은 사람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에스더 2장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와 개인의 인생을 다스리십니다.
와스디를 폐위시킨 아하수에로 왕은 새로운 왕후를 뽑기 위해 아리따운 여인들을 모으게 되고 에스더가 왕후로 뽑히게 됩니다.
또한, 삼촌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모의를 에스더에게 제보해 주고 왕을 살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2가지 사건은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에 포석이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역사의 종말을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마지막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13절)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마지막때에 다시 오셔서 결산하시는 주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14-30절)
31절 이하에 나오는 양ㅇ과 염소의 비유는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역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역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가 흘러가는대로 놔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깨어서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주님을 섬기듯이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사도행전 25장
여전히 재판 중입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행정장관 베스도가 부임하여 이 사건을 맡게 되고, 아그립바왕이 문안하러 왔다가 바울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한껏 위엄을 갖추고 바울을 재판정에 세웁니다(23절).
세상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권세와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재판관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그들과 타협하지도 않았고 겁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요청하는 바울의 담대함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깨달음과 적용하기>
세상은 두려움으로 우리를 몰아세웁니다.
이삭도 두려워했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사도바울도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보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권력자들이나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의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삭처럼 우물을 파서 르호봇이라고 이름을 짓게 될 것이고, 에스더처럼 왕후로 쓰임받게 될 것이고,
바울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주님만 두려워하고 주님만 신뢰하여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