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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24호>  코람데오 정신을 붙잡을 때 행복이 지속됩니다.
 
코람데오란 코람(Coram, ~앞에서) + 데오(Deo, 하나님) 의 합성어로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성경에서 '주님 앞에서' '여호와(하나님) 앞에서' 라는 표현이 코람데오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6년간 가정교회(목장)을 세워오면서 제 자신이 탈진하거나 지치지 않고 힘차게 달려올 수 있었던 힘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라는 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계속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도록 하는 비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역을 할 때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든지, 인정받으려고 행동했을때 인정받지 못하면 누구나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섬김과 희생, 그리고 선행을 아시기에 언젠가 하늘 상급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믿고 살아가면 섭섭한 마음도 사라지고 기쁜 마음으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람데오 정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역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기본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불평이나 원망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심을 깨달을 때 과거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현재에 대해 만족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장을 하면서 VIP 영혼들을 섬길 때 내 힘으로 섬기다 보면 불평과 원망이 쉽게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지고 섬기다 보면, 어느새 원망 불평은 사라지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집중하셨습니다.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면 매일 말씀으로 내 삶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큐티 본문을 읽고 하루를 살면서 주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것인지 늘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주님과 대화하며 감사, 회개, 간구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영혼구원하는 삶, 교회를 세워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앞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은혜를 서로 나누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살아갈 때 부담감을 벗어버리고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우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하고,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멋진 모습으로 위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자유함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자존감이 약하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불안함과 소외감에 휩싸여 늘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자존감도 높아지고 
매사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자유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독수리가 날개치며 솟아오르듯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치지 않고 사역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 강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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